1. 목숨값으로 시작된 기묘한 계약
MBC 금토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은 “목숨을 담보로 한 180일 간의 노무 계약 이행기”라는 설정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노동’이라는 주제를 사회고발, 판타지, 코미디, 수사물의 틀 속에서 유쾌하게 풀어낸다.
정경호가 연기하는 주인공 노무진은 시니컬한 성격에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뻔하고, ‘목숨’이라는 무거운 담보를 걸고 180일짜리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단, 그 계약의 조건은 단 하나 —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의 사후 미해결 노동 문제를 풀어주는 것. 여기서부터 ‘노무사’라는 직업이 가진 현실성과, 유령을 보는 판타지 설정이 절묘하게 결합되며 신선한 매력을 선사한다.
2. 정경호의 재발견, 설인아의 존재감
배우 정경호(노무진)는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건조한 말투와 유머, 그리고 감정을 절제한 눈빛으로 ‘노무진’이라는 캐릭터를 완성도 높게 그려낸다. 그가 겪는 ‘죽음 이후의 삶’은 단순한 개그가 아닌, 인간 본연의 죄책감과 속죄, 책임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되며 극의 깊이를 더한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설인아는 노무진의 처제인 나희주 역으로 등장한다. 무진과는 정반대인 따뜻하고 정의로운 성격의 인물로, 각종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고든다. 그녀는 무진의 감정을 자극하며, 점점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설인아는 이 역할을 통해 시청자에게 따뜻한 여운과 동시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차학연은 이번 작품에서 정의감 넘치는 기자출신 유튜버 고견우 역을 맡아, 사건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서사를 밀도 있게 끌고 나간다. 이처럼 각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고, 이들의 관계는 점점 견고해지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https://youtu.be/93CiNzRELLc
3. 사회고발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노무사 노무진〉은 단순한 코미디물도, 단순한 판타지물도 아니다. 각 에피소드가 다루는 사연은 실제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비정규직 문제,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 해고 통보 등 ‘노동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죽은 자의 유령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보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가령 한 에피소드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안전 장비 없이 일하다 사망한 청년의 유령이 등장하고, 노무진은 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안전관리 책임자, 하청업체, 원청회사까지 추적해간다. 단순히 ‘귀신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 더 무서운’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드라마인 셈이다.
4. 유쾌함 속 진심, 웃음 속 눈물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판타지 요소와 사회적 메시지를 적절히 버무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유령을 보는 노무사의 고군분투는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그려진다. 각 에피소드가 끝날 무렵, 사연이 해결되며 유령이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장면은 시청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또한 무진이 점차 변해가는 모습 역시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다. 처음엔 귀찮아하고 도망치려던 그가, 점점 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아가 스스로 책임지려는 모습으로 성장해간다. 이는 단순히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5. 결론 : 새로운 장르의 성공적 실험
MBC의 〈노무사 노무진〉은 흔한 장르물에서 벗어나, 현실과 상상, 웃음과 눈물, 정의와 인간성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작품이다. 단순한 시청률보다 메시지의 전달력과 감정의 울림이 더 중요한 시대, 이 드라마는 그 중심을 정확히 겨냥했다.
정경호의 노련한 연기, 설인아의 따뜻한 존재감, 매회 시청자를 사로잡는 사연과 사건들, 그리고 진심 어린 메시지까지 — 〈노무사 노무진〉은 2025년 상반기, 놓쳐서는 안 될 드라마 중 하나다.
고단한 노동의 무게를 유쾌하게 풀어낸 이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에게 잊지 못할 위로와 질문을 남길 것이다.